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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포스트제국의 경계와 연속성, 문화권력
『동아시아의 포스트제국과 문화권력』은 동아시아에 있어 제국과 포스트(脫/後期)제국의 (비)연속성, 이를 둘러싼 문화권력에 대한 되묻기를 목적으로 한다.
이 책을 엮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는 제국 해체 이후 동아시아의 시공간에서 제국의 기억과 욕망이 망각과 은폐를 수반하며 다층적으로 재현되는 양상에 주목하여,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생산되는 대항적 공간의 개편, 동아시아의 정체성과 문화권력의 투쟁, 문화권력의 변이와 환류에 관해 연구하며, 그 성과를 토대로 ‘한림일본학연구총서[포스트제국의 문화권력 시리즈]’를 간행해왔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성과 중 하나이며 총서 제6권에 해당한다.
『동아시아의 포스트제국과 문화권력』은 첫째, 포스트제국의 국민국가 체제하에서 민족ㆍ젠더ㆍ세대ㆍ계급과 같은 ‘경계’가 사람의 이동ㆍ기억ㆍ신체ㆍ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둘째, 동아시아에서는 포스트제국으로 이행하며 ‘앎ㆍ지식’, ‘매체ㆍ문화’, ‘일상ㆍ생활’의 영역에 냉전이라는 긴장과 대립이 고착화되었고 제국의 질서와 권력이 단절되면서도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재생산되어왔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셋째, 여러 매체를 통한 기억의 계승, 탈제국과 탈국가에 대한 욕망이 도리어 다양한 모순과 역설, 과잉과 균열, 소거와 망각 등을 생성해왔다는 점을 담고 있다. 넷째, 역설적이지만 패전 이후의 일본은 내외부의 타자에 대해 제국의 경험과 욕망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제국과 국민국가를 이동하는 신체, 욕망과 질서의 균열
『동아시아의 포스트제국과 문화권력』은 3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이동하는 신체와 언어, 미디어, 기억의 길항’은 후쿠마 요시아키(福間良明) 리쓰메이칸대학 교수의 「전후 일본과 전쟁체험론의 변용-‘계승이라는 단절’의 역설」, 마쓰다 히로코(松田ヒロ子) 고베학원대학 교수의 「식민지 의학과 제국주의적 커리어-오키나와현 출신자의 대만으로의 이동과 의학교 진학」, 히라노 가쓰야(平野克弥) UCLA 조교수의 「정착민 식민주의적 번역-‘문명화’ 작용과 아이누의 목소리」로 구성된다. 이들의 글은 텍스트와 담론, 사례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통해 제국과 포스트제국 국민국가 체제하에서 만들어진 위계와 경계, 이를 둘러싼 권력의 자장들이 신체, 사물, 문화 등에 강력한 작용을 했다는 점을 드러내고, 기억과 망각의 방법을 통해 무엇을 정당화해왔는지를 지적하며 책임에 대한 사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제2부 ‘자아와 타자-욕망과 질서의 균열’은 왕유틴(王鈺婷) 국립칭화대학 교수의 「민족ㆍ계급ㆍ성별-셰빙잉(謝冰瑩)과 린하이인(林海音) 작품 속 대만 양녀(養女)에 관하여」, 신조 이쿠오(新城郁夫) 류큐대학 교수의 「미군의 오키나와 점령과 오키나와 문학 속 ‘자기’ 표상-오시로 다쓰히로(大城立裕) 『칵테일 파티(カクテル・パーティー)』(1967)의 균열」,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의 「제주/오키나와, 냉전의 억압과 문학의 상상력」으로 구성된다. 대만-오키나와-제주에서 발신된 이 글들은 포스트제국으로 이행하는 동아시아에서 생활세계의 제 영역에 냉전이라는 긴장과 대립이 고착화되었고, 제국의 질서와 권력이 단절되면서도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재생산되어온 것의 의미를 면밀한 소설텍스트 분석을 통해 고찰하고 있다.
제3부 ‘제국과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김남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의 「전후 일본과 아시아주의의 변용-대미 ‘협조’와 ‘자주’ 외교의 길항관계에 대한 재고찰」, 김웅기 동 연구소 HK교수의 「일본의 전쟁배상에 의한 아시아 시장 재진출과 ‘제국’의 온전」, 김현아 동 연구소 HK연구교수의 「해외의 정주외국인 정책으로 본 포스트제국 일본-『계간삼천리』의 재일조선인 법적지위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라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 제3부의 글들은 냉전기에 있어 전후 일본의 외교 전략을 통한 아시아주의의 변용과 ‘역무배상’이라는 전쟁배상을 통해 전후 일본이 제국의 경험과 욕망을 가시화하는 양상, 재일조선인에 대한 법적 지위와 처우에 관한 비교 고찰을 통해 국민국가에 잔존하는 제국의 유제는 무엇인지 보여준다.
제국의 유제와 문화권력이 낳는 갈등과 경계
『동아시아의 포스트제국과 문화권력』을 구성하는 9편의 글은 필자들이 각각의 ‘지금 여기’에서 제국과 제국의 유제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 자장 속의 문화권력은 어떠한 갈등을 낳고 어떠한 경계를 창출 혹은 소거했는지 탐구한다. 또한, 폭력ㆍ차별ㆍ억압ㆍ자본ㆍ민족ㆍ계급ㆍ세대ㆍ젠더 등의 문제가 ‘앎ㆍ지식’, ‘매체ㆍ문화’, ‘일상ㆍ생활’의 영역에서 복잡다단하게 교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라 할 수 있다. 타자의 신체를 선별, 통제, 감시하는 위계적 문화권력은 그 부당함을 정당화 혹은 법제화하며 지배를 합리화했고, 그 인식은 제국 이후 즉 포스트제국의 동아시아를 살아가는 이들의 문화에 뿌리 깊이 자리하며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재현되고 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점에 있어 『동아시아의 포스트제국과 문화권력』은 위계적 역사관에서 벗어난 탈중심적 역사 인식을 가지고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조, 공존의 문제를 사유하는 데 있어 자그마한 디딤돌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