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지리적 공간이 아닌, 유동적이며 투쟁의 장으로 존재하는 ‘동아시아’
이 책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7년부터 수행해 온 인문한국플러스사업(HK+)의 일환으로 기획하여 발간한 책이다.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는 ‘포스트제국의 문화권력과 동아시아’라는 연구 아젠다에 따라 제국일본이 해체된 후에도 ‘앎·지식’, ‘매체·문화’, ‘일상·생활’ 영역에서 문화의 형태를 빌려 존재하는 제국의 유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권력의 작동원리와 동태를 제시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지속되는 갈등의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을 기획, 발간함에 있어 본 사업단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국민국가 체제를 기반으로 세계질서가 재구성되어 흔히 제국주의시대가 끝났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종, 민족, 이성애주의, 전근대성 등을 ‘본질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제국 시기 일어난 점령, 지배, 학살과 같은 폭력을 정당화하고, 서구를 ‘발전’의 최고 단계로 상정하는 단선적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제국주의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던 욕망은 포스트제국 시기에 와서는 국민국가 체제 속에서 ‘국민,’ ‘시민’이라는 주체성을 기반으로 ‘자유’와 ‘평등’ 이데올로기로 변용되어 재생산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제국 해체 후 부상한 국민국가를 제국주의와 완전히 분리된 정치기구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포스트제국이라는 틀을 통해서 특히 동아시아에서 전개된 국민국가 재편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여 제국과 단절시키거나 제국주의를 계승하려 하는 권력의 동태를 조명하고 있다. 더불어 제국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대상이 되어 포스트제국 시기에도 여전히 권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조선인 BC급 전범, 오키나와 주민, 아이누, 재일한국·조선인들의 길항의 경험에 주목한다. 이들은 제국과 국민국가의 구조적 권력에 전면적으로 맞서기도 하지만, 그 길항의 경험은 제국주의적 인식이나 가치관을 모방, 전유하면서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수반하기도 한다. 이처럼 제국과 국민국가가 구조화하는 권력과 이에 대응하는 동아시아 사람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재검토하여 동아시아의 ‘앎·지식’, ‘매체·문화’, ‘일상·생활’ 영역에서 생성, 작동되는 권력의 역동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세계 석학이자 미국 코넬대학 명예교수인 사카이 나오키(酒井直樹)는 ‘동아시아’라는 상상의 공간이 형성된 배후에 존재하는 제국주의적 욕망과 질서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고, 제국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침략과 전쟁, 그리고 그 책임을 묻는 연구와 활동을 이끌어 온 일본 케이센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우쓰미 아이코(内海愛子)는 공식 기록에 드러나지 않는 한국·조선인 BC급 전범들의 기억과 저항의 양상을 제시했다. 더불어 이 두 편의 글을 필두로 오키나와 주민들의 특수한 저항의 방식과 그 의미, 아이누의 말을 마주보지 못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의식, 1945년 이후 재일한국·조선인이 펼친 일상의 투쟁에 관한 글을 수록하였다. 각 글을 통해 제국의 유제와 이들의 길항 경험이 충돌하는 양상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가 절대적인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투쟁의 장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재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현재도 지속되는 국민국가 체제를 상대화시켜 진정한 탈제국의 가능성과 동아시아 사람들이 스스로 구축하는 화해와 협력, 공존을 모색하는 논의를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사카이 나오키 酒井直樹, Sakai Naoki
코넬대학 아시아학과와 비교문학과 교수이자 명예교수. 사상사, 국민주의, 인종주의, 번역 등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The End of Pax Americana : the Loss of Empire and Hikikomori Nationalism(2022, Duke University Press), 『希望と憲法』(2008, 以文社), Translation and Subjectivity(1998,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Voices of the Past : the Status of Language in Eighteenth-Century Japanese Discourse(1991, Cornell University Press) 등이 있으며 그 외 다수 논문이 있다.
우쓰미 아이코 内海愛子, Utsumi Aiko
케이센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와세다대학 평화학연구소 초빙교수, 역사사회학 전공, 주요 저서로는 『朝鮮人BC級戦犯の記録』(1982, 勁草書房/2015, 岩波現代文庫), 『戦後補償から考える日本とアジア』(2002, 山川出版社), 『日本軍の捕虜政策』(2005, 青木書店), 해설 및 편저로 『村井宇野子の朝鮮·清国紀行-日露戦争後の東アジアを行く』(2021, 梨の木舎)가 있다.
마크 윈체스터 マ-ク·ウィンチェスタ-, Mark Winchester
일본 국립 아이누민족박물관 연구원. 아이누 근현대 사상사. 역서에 『アイヌ通史』(リチャード·シドル. 2021, 岩波書店)가 있으며, 편저로 『アイヌ民族否定論に抗する』(2015, 河出書房新社), 공저로는 Cultural and Social Division in Contemporary Japan(2020, Routledge), 『移動という経験-日本における「移民」研究の課題』(2013, 有信堂) 등이 있다.
무라카미 요코 村上陽子, Murakami Yoko
오키나와 국제대학 종합문화학부 준교수. 오키나와·일본근현대문학 전공. 전후 오키나오문학 및 원폭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出来事の残響−原爆文学と沖縄文学』(2015, インパクト出版会).
김웅기 金雄基, Kim Woong-Ki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교수, 대한민국의 정책대상으로서의 재일코리안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계간 삼천리』에 나타난 재일코리안 교육에 대한 일본인 교사의 인식과 실천」(2021), 「재일코리안에 대한 한국 법제도 상의 배제 문제 그 특수성 간과 문제를 중심으로」(2021), 공저로 『朝鮮籍とは何か-トランスナショナルの視点から』(2021), 『재일한인의 인류학』(2021) 등이 있다.
김경옥 金慶玉, Kim Kyoung-Ok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연구 분야는 일본근현대사, 일본여성사, 여성노동과 젠더이다. 주요 논문으로 「근대일본의 노동자와 농민의 공동재산으로서의 무산자탁아소」(2021), “Factory labor and childcare in wartime Japan”(2020), 「일본의 여성노동자의 동원과 보호에 관한 연구」(2019), 주요 저서로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문화』(2021, 공저), 『제국과 포스트제국을 넘어서』(2020, 공저), 『한일 화해를 위해 애쓴 일본인들』(2020, 공저) 등이 있다.
김현아 金炫我, Kim Hyun-Ah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주요 논저로는 「전시기 경성호국신사의 건립과 전몰자 위령·현창」(2018), 「전시체제기 식민지조선의 군사원호와 전몰자유가족」(2020), 「패전 후 전쟁미망인의 실상과 유족운동 그리고 국가」(2020), 『제국과 포스트제국을 넘어서』(2020년, 공저), 『제국과 국민국가』(2021년, 공저) 등이 있다.
권연이 權姸李, Kwon Yeoni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강사, 국제일본연구 전공. 일본정치, 시민사회, 한일관계, 동아시아협력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제2기 아베 정권의 장기 집권 요인」(2021), 「일본의 NPO세제우대제도의 제정·개정 과정」(2021), 「市民社会ガバナンスに関する市民意識の日韓比較」(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