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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학문의 권장
분 류 신간도서 > 일본학총서
총서번호 70
저자명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역자명 남상영, 사사가와 고이치(笹川孝一)
출판일 2003-02-25 페이지 수 292 페이지
ISBN 8-9-8410-22-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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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학문의 권장』은 『서양사정』,『문명론의 개략』(1875년)과 함께 후쿠자와 유키치의 3대 명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책은 1871년 그의 고향인 나카쓰(中津)에 ‘나카쓰시학교(中津市學校)’가 설립되자 학생들에게 학문을 권장하기 위해 쓰였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일신독립(一身獨立)’을 이룸으로써 ‘일국독립(一國獨立)’을 성취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당시 일본의 근대 국가 형성과 국가의 독립 유지에 대한 후쿠자와의 고민과 해답뿐 아니라 학문의 중요성과 학문을 하는 자세, 어떤 학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학문에 뜻을 둔 학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소개
1835년 1월 10일 오사카(大阪) 출생.
계몽사상가, 교육가, 저술가.
일찍이 난학(蘭學)과 영학(英學)을 공부하여 일본의 개화 문명화에 선각자 역할을 했음. 조선의 개화파 김옥균, 박영효 등과 교류, 게이오기주쿠(慶?義塾)에 많은 조선 유학생을 받아들였음

<역자소개>
남상영 / 서울출생,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에서 교육학 전공,
            현재 가나자와대학 교양학부 교수

사사가와 고이치 / 도쿄출생, 도쿄도립대학에서 교육학, 생애학습 전공,
                         현재 호세이대학 교수

목차
일러두기ㆍ7
역자의 말ㆍ8
합본(合本)『학문의 권장』서문ㆍ19

초 편ㆍ21
제2편ㆍ35
     서문ㆍ35
     인간은 동등하다는 것ㆍ37
제3편ㆍ47
     국가는 동등하다는 것ㆍ47
     일신독립(一身獨立)하여 일국독립(一國獨立)한다는        것ㆍ49
제4편ㆍ59
     학자의 본분에 대해 논함ㆍ59
     부록ㆍ71
제5편ㆍ73
     메이지 7년 1월 1일의 축사ㆍ74
제6편ㆍ83
     국법의 귀중함에 대해 논함ㆍ83
제7편ㆍ95
     국민의 본분에 대해 논함ㆍ95
제8편ㆍ107
     자신의 마음으로 타인의 몸을 억압하지 마라ㆍ107
제9편ㆍ121
     학문의 취지를 둘로 나누어 기술하여 나카쓰의 옛        친구에게 보내는 글ㆍ121
제10편ㆍ131
     전편의 속편―나카쓰의 옛 친구에게 선사함ㆍ131
제11편ㆍ141
     명분(名分) 때문에 위선군자가 생긴다는 論ㆍ141
제12편ㆍ151
     연설하는 방법을 권장하는 설ㆍ151
     사람의 품행이 고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論ㆍ155
제13편ㆍ163
     원망이 인간에게 해가 된다는 것에 대해 논함ㆍ163
제14편ㆍ173
     심사(心事)의 재고조사(棚?:다나오로시)ㆍ173
    ‘세와’(世話)의 뜻ㆍ180
제15편ㆍ185
     사물을 의심해 본 뒤 취사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         ㆍ185
제16편ㆍ199
     가까운 곳에서부터 독립을 지키는 일ㆍ199
     심사(心事)와 활동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論ㆍ203
제17편ㆍ209
     인망론(人望論)ㆍ209

해설ㆍ221
후쿠자와 유키치 연보ㆍ285
약력ㆍ292

리뷰
dante
2007.10.22

일본의 근대 계몽가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책. 그의 말들중 일부는 여전히 지금도 유효

http://www.aladdin.co.kr/shop/common/wbook_talktalk.aspx?ISBN=8984102229&BranchType=1&CommunityType=CommentReview


반딧불이
2008-08-04 02:49

몇년전 일본에  다녀온 후 몇장의 지폐를 환전하지 않고 아직 보관하고 있다. 잘 꺼내보지도 않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얼굴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일만 엔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이 실려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사람을 몰랐었다. 지금 살펴보니, 게을러서 환전을 하지 않고 갖고 있는 각국의 지폐는 각양각색의 인물열전이기도 하다.


지폐에 얼굴이 있는 사람의 책을 읽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자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쿠자와의 얼굴이 일본의 최고액 지폐인 10000엔에 실린 것은 1984년이라고 한다. 일본 근대 문학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사진과 일본의 근대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후쿠자와의 사진이 나란히 지폐에 실리게 된 것은 좀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흔희 우리의 근대를 이야기 할 때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근대라고 한다. 이식된 근대는 많은 문제를 야기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근대가 이식되는데 있어서 근대의 정신보다 물질적인 면이 주류를 이루는 외형만이 이식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일본에 의해 우리의 근대가 이식되었는데, 그렇다면 일본의 근대화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1854년 일본 역시 미국의 무력에 굴복해 불평등조약을 맺고 개항을 했다. 그 후 서구 열강들이 몰려왔고 일본은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추진해 나갔다. 일본의 근대적인 문명개화의 추진과 독립을 지키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다. 후쿠자와는 밀려들어오는 서구문명으로부터 외형적인 면만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내면 역시 문명화를 이루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학문을 권장하고 있다. 후쿠자와가 권하는 학문은 단순히 문자를 익히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익힌 내용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실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후쿠자와 스스로도 처음 형의 권유로 난어(蘭語)와 난학(蘭學)을 익혔지만 후에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독학으로 영어를 익힌다. 서양의 문물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근대화의 시기에 그는 실학을 실천한 것이다. 또한 그는 유치원 및 대학을 설립하고 다양한 서양학술 서적들을 번역하는데 앞장섰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많은 어휘들 문명(civilization). 연설(speech). 저작권(copyright)등도 모두 그의 번역어라고 한다.

후쿠자와는 一身獨立, 一家獨立, 天下國家獨立를 강조하는데 이는 『대학』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맞닿아 있다. 그는 국민들 개개인의 독립을 특히 강조했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당시의 근대화는 지금 내가 느끼는 세계정세보다도 더 급변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시대의 급류 속에서 올곧게 독립된 민족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몸소 실천했던 학자의 긴장감과 절실함이 느껴졌다.  일본과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우리의 근대화에 후쿠자와의 이런 정신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가 의문으로 남는다. 후쿠자와의 초기 저작인 이 책의 내용과는 달리 1894년 청일전쟁 발발 당시 군비 명목으로 만엔을 정부에 지원했다는 후기사상의 변화 역시 짚어야할 것으로 남는다. 일본인들은 현재의 만엔짜리 지폐에 그의 초상을 남겨 그가 전쟁지원금으로 낸 만엔을 기념하는 것은 아닐까?

http://blog.aladdin.co.kr/734872133/2223779


Dante
2006-03-17 00:52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의 근대 국가 성립에 대단히 강한 영향을 끼친 리버럴파의 주도적인 인물이라고 불려왔다. 후쿠자와는 에도시대 말엽인 1860년과 1862년에 미국을, 1867년에는 유럽의 6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오늘날 게이오기주쿠 대학의 전신인 '게이오기주쿠'를 1867년에 설립하여 실업계, 교육계, 관계, 정계 등에 많은 인재를 배출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일본 지폐 10,000엔짜리에 쇼토쿠 태자를 물리치고 등장한 인물이다.

- 본문중에서

이 책이 출판된 해는 1880년이다. 메이지 유신이 이루러진후 13년 뒤에 나온 것이다. 120년전에 나온 이 책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다시 가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후쿠자와가 권장하고 있는 '학문'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따라가 보는 것으로 출발해보자.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개화를 촉발시켰다면 이 책이 발행된 전후로 막부시대의 전통적이고, 유교적인 원리가 어떻게 평등과 민족국가의 중요성, 국제사회를 의식하는 개방의 시대로 변해가는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개화기에 후쿠자와가 강조한 학문은 먼저 실용적이어야했고, 개방적이야했으며, 민족국가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개방적이라 하여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의심해본 뒤 취사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판단력을 중요히 여기고 있다. 그는 이러한 학문을 권장함으로써 일본의 근대사회 형성과 국가형성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 같다.

많은 학비를 들여서 수년간 고생끝에 서양학을 공부하더라도 자신의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하면 이를 무용지물, 식객이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 그가 봤던 학문의 실용적 측면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학문의 목적은 정부와 동등하게 상대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지위를 높이는 길이라 함으로써 무지를 하루빨리 벗어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측에서 일하기보다는 그에 대항하여 사립의 측면에 섰다는 것도 후쿠자와의 특색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사실 일본에 더 먼저 들어온 네덜란드학문(난학)을 먼저 시작했으나, 외국을 돌아보는 동안 시대의 대세가 영어권에 있음을 간파하고 난학을 버리고 영어에 매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영어를 동양권에 도입하는데 역할을 했는데 영단어를 한자어로 바꾸는데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물리학, 권리 등이 그렇다 한다.) 또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기위해서 과거의 인습을 비판하는 제8편을 보면 그가 유교적인 원리를 비판하면서 남녀평등에오늘날 못지않은 상당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된다. (특히 지금이야 놀랄게 없지만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심리를 꿰뚫어본것은 대단하다)

이 책은 그의 생애 초반부에 쓰여진 명저이며 그 당시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후쿠자와가 이 책에 걸맞게 행동했는지는 알 수 없고, 김옥균 등의 개화파와 연루되어 있으며 '탈아론'등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의 위치는 우리 입장에서는 논쟁에서 자유롭지않을 것 같다.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근대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지식인이 학문과 개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어떻게 인민을 계몽하려고 노력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데에 있다.

http://blog.aladdin.co.kr/devilmaycry/840434


안원모 (경향신문)
등록일: 2007.10.02

일본의 대표적 지성이자 근대화의 선구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1873년 고향인 규슈 나카스에 나카스시학교 설립을 맞아 한 권의 책을 썼다. 고향 사람들에게 학문을 권장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학문의 권장’(소화)이다. 당시 이 책은 외세의 위세 아래 근대화를 절박하게 추구하던 일본인들에게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

주제는 학문을 통한 일신의 독립을 논의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매우 실용적이다. 또한 시공을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던져주는 메시지가 풍부하다.

물론 1870년대 일본과 2007년의 우리나라가 같지는 않다. 그러나 책이 서술하고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세, 국가와 사회·개인 간의 관계, 사회속에서 한 인간이 자력독립할 수 있는 방법, 개인이 근대사회에서 타인에게 취해야 할 행동규범이나 기준, 가치관 등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단기간에 근대 시민국가로 들어서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민으로서의 개인이 개인과 사회·국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그 행동기준이 정립되지 않고 있다. 그저 각자의 목소리만 높이는 실정이다. 책은 공동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개인 각자가 어떻게 노력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비교적 합리적인,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기준 등을 제시한다.

우리 근·현대사 학자들 사이에서는 후쿠자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인간과 사회에서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책은 그 행간을 잘 읽는 사람에게 하나의 등불이자,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지침이 될 것으로 믿는다.

<안원모 법무법인 한길 대표변호사〉

http://review.nate.com/view/8457529/review/1/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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