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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근대 일본 정치사
분 류 신간도서 > 일본학총서
총서번호 9
저자명 岡義武(오카 요시타케)
역자명 장인성(張寅性)
출판일 1996-03-15 페이지 수 114 페이지
ISBN 8-9-85883-3-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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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 정치사에 대한 명저, 이 책은 무미건조한 사건 위주의 정치사 서술방식을 지양하고 민족 독립과 내셔널리즘의 관점에서 근대 일본 정치의 본질을 밝혀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메이지유신이 민족 혁명으로서 어떠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근대 일본이 서구 열강이라는 외세에 대항하여 어떠한 주체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저자소개
1926년 도쿄대학 정치학과 졸업
도쿄대학 법학부 교수, 동 법학부장 역임
전 공  일본 정치사, 유럽 정치사
저 서 『근대 일본의 형성』,『전환기의 다이쇼(大正)』,『근대 일본의 정치가』,『근대일본의 정치사1』,『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
『독일 데모크라시의 비극』,『근대 유럽 정치사』
『국제정치사』

목차
제1장 민족 혁명으로서의 메이지(明治)유신ㆍ7
제2장 신정부ㆍ18
제3장 입헌정의 도입ㆍ31
제4장 두 차례의 전쟁ㆍ47
제5장 완만한 전환ㆍ60
제6장 정당 정치에 대한 환멸ㆍ78
제7장 파국의 길ㆍ92
에필로그ㆍ106
역자의 말ㆍ112
참고문헌

리뷰
soocut(스티브)
2008.03.02

근래 술자리가 많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시간이 그만큼 없었다고 해야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어제 술자리는 상대방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인해서 취소가 되었고, 따라서 홀가분하게 오랫만에 서점에 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서점에서 직접 책을 구매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책을 사는 것보다는 비싸지만, 근래에 나온 신간을 살펴볼 수도 있고, 내가 미처 몰랐던 책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서점을 가는 것은 말하자면, 나에게 보물이 되는 무엇인가를 찾으러 가는 유쾌한 여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재작년이었을 것이다. 구립 도서관에서 무라이 쇼스케의 '중세 왜인의 세계'라는 책을 빌렸던 것이다. 그 책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에서 만든 총서의 하나였는데, 대중적인 색채를 가지지 못해서 서점에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도 그 총서의 책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흥미롭게 구한 책이 '근대 일본 정치사'였다. '근대 일본 정치사'는 메이지 유신이래 1945년 일본 패전까지의 일본의 정치사를 간략하게 소개한 책으로 짧은 분량의 개설서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사에 커다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일본봉건사회, 즉 에도 막부 말기에 이미 일본은 상업 자본주의 발전의 조짐이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상업 자본주의의 발전은 하급 무사층의 생활을 압박하면서 이들의 몰락을 촉진시켰다. 에도 막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개국화친을 하면서, 일련의 이러한 하급무사를 중심으로 한 존왕양이 운동이 일어났다. 존왕양이의 내용이 비록 유치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일본 민족의식의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내외부적으로 압력을 받은 에도 막부는 결국 정권을 조정에 반납하게 되어, 이른바 메이지 유신이 성립된다.  저자는 이러한 메이지 유신이 세계정치 속에서의 일본의 국민적 독립을 확보했다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며, 메이지 유신을 민족혁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을 탄생한 신정부는 변혁의 주요세력인 사쓰마, 죠슈번의 하급무사 출신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이들은 일종의 도당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파벌정부'로 이름지어졌다. 이들은 일본의 독립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또한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서도 그러했다. 신정부의 목적은 일본의 독립이었으므로 그 추진도 그 수준에만 머물렀고, 심지어 이를 위해서는 반근대적인 정책도 취했다. 그것의 하나가 천황의 신격화를 통한 국민의 단결이었다. 또한 이러한 천황의 절대적 지위는 번벌세력 (사쓰마, 죠슈번 출신)의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하는 목적으로도 작용했다. 이때 일본은 자신들이 제국주의의 물결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일본을 제국주의국가화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사이고 다카모리에 의해서 추진되었던 정한론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신정부 수립 후, 의회개설에 대한 요구가 나왔다. 그러나 이것이 진보적으로 보이나, 정부의 권력을 장악한 번벌세력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타파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이때부터 1890년 제국의회 개설까지의 시기를 자유민권운동 시기라고 한다. 이러한 정치적 민주화는 사실 국민이 국가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국가를 강대하게 할 것이라는 목적이었으므로 이들은 민족적 자유주의자들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몰락한 무사계급의 지지를 받았다. 1889년 흠정헌법이 공표되었으나 이는 표면상의 입헌정이었을 뿐이었고 이는 자유민권운동이 근대국가에 상응하는 민주헌법을 제정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1890년 제국의회 개설을 기점으로, 자유민권운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정당들은 그 지지층을 몰락한 무사계급에서 부르주아 계급으로 전환했다. 1895년 청일전쟁에 승리했으나, 일본은 삼국간섭으로 오히려 불안감마저 느꼈으며, 막대한 군비확충을 시작했다. 러시아가 한국에 세력을 확대하면서 일본은 영일동맹을 체결하였고,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한국을 합병하게 된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자국의 안전을 위주한 대외관에서 해외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사고를 전환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은 그 발전방향으로 아시아대륙을 택했다. 이것은 미영의 일본에 대한 압력을 가져왔고, 이는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번벌세력은 정당세력과 버젓이 손을 잡게 되는데, 이는 메이지 유신 후 반세기가 지남음에도 정당세력이 번벌세력을 압도하지 못했고, 오히려 번벌세력이 커다란 영향력을 계속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일본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계급도 성장했으나 이들의 정치세력화는 끊임없이 탄압받았고, 조직화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는 일본의 산업구조와도 연관이 있었다. 즉, 저임금 미숙력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집약적 산업이 주를 이루어 의식적 개화가 더뎠다는 것이다.

일본의 산업은 1차대전을 통하여 급속도록 발전하였다. 또한 정당과 지주,부르주아의 긴밀한 제휴는 대규모의 부정부패를 야기시켰다. 이러한 가운데 호헌운동의 결과, 보통선거제가 도입되게 된다. 그러나 보통선거제는 기존의 정치질서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정당은 점차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정당정치의 신용은 땅에 떨어졌다. 일본 정당 정치의 혼란은 그것이 인민대중의 지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그 토대가 대단히 취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가운데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통하여 군부의 정치세력화는 더욱 눈에 띄게 일어났다. 육군내부에서는 황도파와 통제파의 파벌이 생기게 되었고, 곧 통제파가 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이따라 일어난 신체제 운동으로 모든 정당이 모여 '대정익찬회'를 수립, 일국일당체제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대정익찬회'는 군부의 외곽단체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1940년 수상이 된 '도조 히데키'는 미국에 대해서 파멸적인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전쟁패망과 함께 시작된 미국의 점령 하에서 일본은 민주헌법을 제정하였다. 이전의 국가주의시대의 정치가들도 추방되었다. 하지만 이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인해 이들의 복귀하였고, 공산주의 운동도 탄압받고 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본의 근대화는 편향적인 것 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일본의 목표가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시대에서의 민족독립이었기 때문이었고, 모든 정책은 이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비록 근대화의 산물을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그 내부에서는 여전히 천황의 절대신격화와 같은 전근대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민주화는 한번도 인민대중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철저하게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제대로된 민주주의 실현은 요원한 것이었고, 진정한 노동운동은 애초부터 힘든 것이었다.

2차대전의 패전으로부터 일본은 평화헌법을 받아들였지만 이것 역시 미국이라는 점령군의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근래에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를 보면서, 나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서 조작된 이미지들의 환영들을 본다. 여전히 일부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신으로 보이고, 과거의 망령은 일본인들을 아직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취약한 한국과 중국이 제3국의 세력화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근대 일본의 불안이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어쩌면 다른 면에서는 침략에 대한 면죄부처럼 들리지 않는 감도 없진 않다.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라이샤워가 말한 대로, 일본이 한국과 중국과 달리,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岡 義武(おか よしたけ、1902年10月21日 - 1990年10月5日)は、日本の政治?者、東京大?名??授。?門は、政治史、日本政治史。

출처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78393&menu=nview&mode=unfold&sort=best&point=&page=1&find=off&display_seq=1357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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