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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청일전쟁
분 류 신간도서 > 일본학총서
총서번호 7
저자명 藤村道生(후지무라 미치오)
역자명 허남린
출판일 1997-05-15 페이지 수 296 페이지
ISBN 8-9-85883-5-7 7
첨부파일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책소개
청일전쟁은 일본의 민중 자신이 국제 질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동참하는 시발점이 되었지만 그간의 연구서들은 그 중층적 구조의 한 국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진실을 밝힐 수 없었다. 이 책은 최초로 폭 넓은 외교 관계 사료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청일전쟁의 전체상을 밝히려 시도한 후지무라 미치오의 역작이다.

저자소개
나고야 출생.
나고야대학 문학부 사학과 졸업.
일본 근대사 전공.
규슈대학 교수.
저서-『러일(露日)전쟁사 연구』(공저),
『山有明(아이가타 아리모토)』, 『?補 청일전쟁』

목차
서문ㆍ7
Ⅰ.서론: 일본 군국주의와 동아시아ㆍ15
Ⅱ.청일 개전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정세ㆍ53
Ⅲ.무쓰(陸?)외교ㆍ79
Ⅳ.전쟁의 경과와 대 조선 정책이 전개ㆍ121
Ⅴ.청국 영토에의 침입ㆍ163
Ⅵ.시모노세키조약과 삼국 간섭ㆍ201
Ⅶ.대만 점령과 전후 경영ㆍ235
Ⅷ.결론: 청일전쟁의 역사적 의의ㆍ271

리뷰
soocut(스티브)
2008.03.03

지난 금요일에 구입한 4권의 책 중 마지막 책이다. 주말에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를 않고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역사전공을 한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사 관련의 책을 읽으면 단숨에 읽어나가고는 하는 편이다. 오늘도 오전에 이유경 씨의 책을 다 읽고서, 출퇴근 길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청일전쟁'을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마치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책은 무척이나 길고 여러 외교문서라든지 자료를 인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또 한가지는 일본어를 그대로 한국어로 옮긴 것 같은 번역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다.

하지만, 청일전쟁은 우리와도 무척이나 연관이 많은 일대 사건이었고, 이 전쟁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이 어떤 것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도 사실일 듯 하다. 청일전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제국주의 시작을 알렸던 이 청일전쟁의 모습과 성격은 과연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주제이고, 현대의 일본인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단서이기도 할 것 같다.

사실 전쟁의 경과와 상세한 내용을 여기서 거론한다는 것은 너무 길고, 소설의 내용을 열거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략할까 한다. 물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많지만.. 어쨌든 전쟁의 성격과 향후 일본의 제국주의 단초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일 것 같으며, 그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청일전쟁은 10년 후의 러일전쟁에 비하여 그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와 군사적 천황제 이데올로기을 확립한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동 전쟁은 일본의 군사전략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해상전에서는 함대전 결전과 거포전략이, 육상전에서는 보급과 방역체계의 재고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일본군의 전장에서의 잔악행위가 이때부터 정부의 묵인 하에 시작되었던 것이고, 일본패전까지 계속되었다. 어쨌든 청일전쟁은 일본의 군사체제와 군사적 천황제를 확립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청일전쟁은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 열강의 분할을 촉진시켰고 이는 동북아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영, 러의 정책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은 극동에서의 세력확장에 나선 러시아에 대한 방위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 영일동맹이 이루어졌다. 일본은 비록 요동반도의 획득에는 실패했으나, 대만을 얻고 중국의 각 지역에 조계를 얻어 대중국 침략의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러나 청일전쟁의 최대 관심은 조선에 대해서는 열강의 압력으로 인해 세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후일의 러일전쟁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청일전쟁은 메이지 유신 이래, 최대의 과제라 할 수 있는 국가독립의 목적을 아시아 국가들과의 전쟁과 억압의 수단으로 이루어내었다. 서양과의 대등성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귀속을 최종적으로 귀착하여 고유영역을 확정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일본주의는 등장하게 된다. 이는 천황제 관료를 선두에 두고, 아시아 인접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적 실천'을 강행하는 특수 일본적 이데올로기였다. 또한, 청일전쟁은 그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격으로 인하여, 한국과 중국에서의 민족운동의 시작을 알리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아시아 민족운동에 대한 억압은 당연히 청일전쟁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으로 간단하게 본서의 내용을 그 의의들을 중심으로 하여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았다. 청일전쟁은 저자가 말한 대로 근대일본을 이해하는 데 무척이나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다. 막부 후기, 상업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후발주자로서 일본 자본주의는 당연히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이를 제국주의적 실천을 통해서 보충했고 그것은 그후 일본의 패망까지 계속된 일본 제국주의의 패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파멸의 길임을 깨닫는 데는 일본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으며, 결국은 막대한 인명과 재산을 소진한 채 사라져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처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78413&menu=nview&mode=unfold&sort=best&point=&page=1&find=off&display_seq=1359226


연두부
2008-03-28 17:44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제독인 페리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한 일본이 이후 1868년의 메이지유신을 거쳐 1894년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산술적인 시간은 불과 40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개항당시에 경악스런 눈으로 쳐다보던, 미국의 쇠로 만든 배(군함)를 불과 20-30년 만에 건조해 내었고 성능과 규모도 당시의 동북아 전통의 강국이었던 중국을 능가한 것이었다.

중간에 메이지유신이라는 그들 나름의 효율적인(번체제보다는..) 정치적 변동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아시아의 소국에 머물렀던 일본의 변신은 놀라웠다.

당시 일본이 근대화의 방법으로 선택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천황을 비롯한 관료집단은 물론, 특히 언론이 거의 모든 사안에서 한 술 더 떠서 선동하고 있음은 오늘날에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일전쟁에 승리하고도 삼국간섭에 의해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본은 이 전쟁으로 국제무대에 당당한 제국주의체제의 일원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들의 근대를 위한 첫 발걸음과 그 이후의 행보는 이후 아시아 민중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을 선사했음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헌법 개정을 완료하고 착실한 군비증강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은 서북공정을 마무리하고(물론 요즘의 티벳 사태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신문 어디를 찾아봐도 세계정세와 동북아 정세에 대비한 준비와 대안마련에 대해서는 찾을 수가 없다.

이 책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시작에 대한 기록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의 일본 관리들이 세계정세를 보는 눈은 냉철했고 그들의 준비는 무서울 만큼 치밀했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http://blog.aladdin.co.kr/tjtong/201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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